밥 짓는 시인
아들이 아침에 툭 한 마디 합니다.
"목사가 영성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지 요즘 점점 금융과 주식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지금껏 세상을 좀 더 알아야지, 하면서 뼈를 갈아 넣는 심정으로 새로운 영역의 일을 채근해가며 쉼없이 달려오다보니,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아들의 무심코 내밷은 말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2025년 설날 명절 휴일을 앞두고 친구들을 만났었는데, 그 친구 중에 하나가 비슷한 말을 한 것이 갑자기 기억이 납니다.
"너는 존재가 아름다운 사람인데 뭘 자꾸 하려고 하니,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과분한 칭찬입니다. 제가 들어야할 말도 아닌 것 같았고, 요즘 살아가는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엔 어려서부터 교회 형으로, 나이가 들어서는 삶의 동반자요, 활동가 선배로 함께 고생했었던 친형과 같은 형으로부터 시 한 편이 선물로 도착했습니다.
시골로 내려오다/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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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위에 서서 새 길을 꿈꾼다/끼니때가 되면 쌀을 안치고 밥물이 끓는 동안엔 슬하의 것들을 돌보아야 일과는 매우 신성한 것이다/ ...
이 시를 읽는데 긴 싯구 중에 하필 이 구절 두 개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하나는 이별을 해야 할 싯구로, 다른 하나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싯구로 말입니다.
없는 길 위에 서서 새 길을 꿈꾸는 것도, 지금 식솔들을 위해 밥 짓는 것도 모두가 중요합니다.
정작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것을 선택하는가 보다 내 몸을 더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엄마들이 하느님이 인간에게 보내 준 신神의 모형이라면, 하느님의 말씀은 몸이 부숴져라 자식들 먹이기 위해 애쓰셨던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처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말씀이 된 타자들에게 내 몸을 움직여가며 밥 한 끼라도 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하느님도 인정하시겠지요.
시인의 바램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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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버렸지만 길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무릇 길들이란 땅 위에 세운 당신과 나의 유적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에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길이 바뀐다/ 길 없는 길 위에 서서 새 길을 꿈꾼다/ ...
나사렛 예수가 보여 주신 삶이 시인이 고백했던 모습이 아닐까.
하느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인간을 위해 자기의 몸을 버리신 사랑 길, 그 길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길을 내며 살고 있는 순례자임을 되새기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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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개역개정 마태복음 11장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사진 : 타클라마칸 사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