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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성화sanctification

corsicastar 2025. 2. 4. 10:26

동학창시자 수운 최재우 선생의 '시천주時天主' 사상은 "인간 속에 하느님이 있다"는 사상입니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의 '양천주養天主' 사상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사상입니다. 
동학 3대 교주 손병희 선생의 '인내천人乃天'은 "사람이 곧 한울(하느님)이다."라는 사상입니다. 
 
우리 속에 신성을 길러 내는 것이 동학의 양천주 사상입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아들, 딸로서 사는 것인데 하느님을 양육하고 하느님을 행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습니다.
수운 최재우의 시천주 사상은 얼마전에 제 묵상 글에서 소개해 드렸던 신학자 중에  M. 로버트 멀홀랜드 주니어가 말했던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는님이 말씀하여 존재하게 된 말씀(a word)이다.“
매우 동양적 신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루마니아의 소설가이자 수사였던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1922가 있습니다. 
그의 저서 <25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하느님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가 신이라니, 천지가 개벽할 일입니다. 
이런 신앙 고백은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근대 그리스도교에서 대표적으로 이 가르침을 설파한 사람을 꼽으라면 성공회 사제였으면서 감리교회를 창시한 존 웨슬리John Wesley 입니다. 
그의 성화론聖化論, Doctrine of Sanctification은 단순한 도덕적 개선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에 의해 이루어지는 내적 변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하느님을 찾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먼저 찾아 오셔서 구원의 길을 여신다고 말합니다(선행적 은총).
이것을 장로교회에서는 존 칼빈John Calvin의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선택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미리 정하신 것", 이것이 예정설입니다.
이 부분은 장로교회나, 감리교회 또는 가톨릭 교회까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성화聖化'를 강조하는 웨슬리는 인간에게 주신 자기결정권 때문에 하느님이 인간을 의롭다 여기시는 믿음을 수용할 힘이 있다고 여기며, 그 과정에서 ‘칭의Justification'를 통해 죄 용서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중생Regeneration'인 거듭남이 일어나며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바로 성화는 칭의 이후에 지속적으로 거룩해 지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완전한 사랑Perfect Love'은 인간이 죽어서 하느님나라에 가서도 계속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상태를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와 흔적에서 찾아 보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어제 2025년 2월 2일 새맘교회(이수연 목사) 주일예배 설교 제목이 "지혜로운 판단“ 이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땅에 지혜의 대명사인 솔로몬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호와(하느님)가 네가 왕이 되면 갖고 싶으게 있을텐데 뭐든지 말하면 주리라고 하신 것에 응답을 받게 됩니다. 
솔로몬은 부귀영화도 말고 오래 사는 것도 말고, 저 많은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원한다."고 했고, 그 지혜가 임한 후에 첫번째 재판인 두 창녀가 한 아기를 데리고 와서 두 여인 모두 자기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재판의 상황이 설교 내용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신하에게 칼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칼로 저 아이를 둘로 나눠서 두 여인이 공평하게 나눠 가져 가도록 지시 합니다.
그러자 두 여인 중에 한 여인은 아이만을 살려두시고 친자권을 포기 하겠다고 했고, 다른 한 여인은 둘로 나눠 공평하게 판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아이를 안 가져도 되니, 아이를 살려서 저 여인에게 주라고 한, 여인이 진짜 어머니라고 공표합니다. 
이 재판을 통해 설교자가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25년 현재의 대한민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의 과정을 밟으면서 국민이 둘로 쪼개진 상황입니다. 
 
우리는 판결을 해 주는 사람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우리가 판단해야 할 것이 있는데, 국론을 분열 시키는 자가 누구고, 국론을 통합시키려는 자가 누구인지를 인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와 국민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만 살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자가 누구고,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며 투쟁하는 자는 누구인가, 살펴봐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한국의 교회들, 특히 중대형교회들은 솔로몬의 지혜를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또 필요한 분들은 헌법재판소 판사들과 법원의 판사들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의 관점은 다름아니라, 나의 의지와 도덕적 가치 판단과 여론이 아니었고, 진심으로 본질을 위해 자신의 이해타산을 포기할 수 있는지, 상대의 태도와 관점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무조건 타자를 향해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적으로 타자를 용서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예수의 제자로 따르겠다는 것은 오판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반드시 양면이 존재하고, 피의자가 있으면 피해자도 있고, 이득을 본 사람이 있으면 손해를 본 사람도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보여준 판단에는 죄인과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 분명 존재 합니다. 
그 진위를 잘 가려내는 지혜를 지닌 건강한 이성을 가진 것을 성서는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조건 아래서 선과 악을 가리라는 것이 아닌,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정의가 서고, 너무나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평화롭게 아우를 수 있는 공의가 담겨진 상태에서 용서를 해야 할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을 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라는 의미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성숙한 완전의 다음 단계가 기다리는데 자신의 목숨보다 더 타자를 사랑하는 실천입니다.
이것이 흔적입니다. 말 뿐이 아닌,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정의와 공의를 지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용서하는 사랑의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예배 후에 몇몇 교인들은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세월호 생명안정공원이 있는 안산시로 향해 '4.16 기억예배'에 참석하고 흩어지면서 짬봉 국물에 추위를 녹이는 실천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가 살아 숨쉬는 한국 교회들이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