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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어도, 수줍어도 품으시는 예수

corsicastar 2025. 2. 9. 11:00

주일 아침에 교회에 왔습니다.
한 성도님 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새로운 교회 출석한지 두달이 채 안됐는데 벌써 두 번째 책 선물을 받았습니다.
요즘 교회 독서 동아리에서 채택된 책이었습니다.
예배 시간 전이어서 책을 들춰봤는데 이런 추천의 글이 있더군요.

“문신투성이 볼즈웨버가 그 거친 입으로 대변하는 집단은, 우파이기에는 충분히 기독교인답지 못하고 좌파이기에는 너무 예수님 냄새가 난다고 질리도록 비난받는 무리다.”-워싱턴 포스트-

대단히 기대가 되는 책입니다.
제가 책을 절독한지 7년만에 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다시 책을 읽는 놀라운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빈민사역에 투신하다보니 자연스롭게 진보 진영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저는 매우 온건한 편이라 진보주의자나 명분주의자들에게는 배척을 받은 경우도 있었는데, 볼즈웨버 책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예수 때문에 배척을 받아 본 적이 저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이나 사람이나, 자기에게 맞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참 많은 사람과 책을 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교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람도, 교회도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노숙인 교회를 10년 136일을 목회를 했는데, 늘 사람을 떠나보내는게 최선인 목회를 하는 것도 나이가 들면서는 버거웠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문화를 저는 다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사람의 성도만이 제 주변에 계시는데, 그 분 역시 고마움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곁에 있는 것일 뿐 저는 아직도 그 성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 안타까움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공감empathy'과 '동정sympathy' 같은 언어와는 다른 것이고, 오히려 시혜자와 수혜자의 관계 또는 '교감interacting'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가 좀 더 가까운 비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를 믿다보면 경륜과 관심사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의 결이 좋게 바뀌기도 하지만, 본인의 성향에 따라 믿음도 편향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편향성 때문에 만나는 사람도 달라지는 것처럼, 성서의 말씀을 내 입맛에 맞추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스스로 들여다보아야 할 거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직 본인 자신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나마 건강한 종교인이 될 수 있는데 사람은 본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존재이기 때문에 경전인 성서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오직 내가 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사는지, 그것이 인지하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에 와서 선물 받은 책 장을 넘겨 보았습니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조심히 속독으로 스켄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