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속에 계신 하느님
“색은 나의 모든 시간을 사로잡는 집착이자 기쁨이며, 고통이다.” Claude Monet
1873년 프랑스에서 열렸던 전시회 “제1회 화가 조각가 판화 무명 예술가 협회 전람회”에서 클로드 모네 작품, “인상, 해돋이”를 시작으로 인상주의는 시작되었습니다.
인상주의 전까지만해도 그림은 사실과 똑같이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당연히 인상주의 그림을 당시 사람들은 좋게 평가하지 않았고, 너무나 쉽게 거친 붓질을 한 그림에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상파 화가들은 사물을 얼마나 똑같이 그리는가의 한계를 넘어 빛의 향연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운 그림의 세계를 열었고, 사물이 중심이 아니라, 사물과 자연과 바다와 하늘, 꽃과 나무에 비치는 빛을 그려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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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숨을 쉰다
逸晴 오범석
기형도 시 중에 “소리의 뼈”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대충 내용이 이렇다./소리에도 뼈가 있다/
김교수님의 강의에는 항상 침묵의 시간이 있다./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모든 소리들을 훨씬 잘 듣게 되었다./
이 얼마나 멋진 착상인가/우리 삶에서 엉뚱한 착상이 새로운 세계와 조우하는/기점起點이 되는 것을 경험해 봤는가/
나는 몇년전 어느 봄날 활짝 핀 꽃의 만발함을 보며
시 라는 것을 처음 써 봤던 것 같다/
그날은 새벽 같이 일어나 택배 나르러 나가는 날이었고/ 작업복 차림의 나는 더없이 가벼운 걸음걸이로/
동틀시간 약간의 빛으로 겨우 꽃잎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그 날 이후 대부분은 시랄 것도 없는 글쓰기 정도의 관찰이지만/나는 세상을 보는 눈이 마음에 있음을 찾았다/
이젠 시간을 보는 눈이 생겼고, 눈으로 보는 풍경이 아닌,/
오로지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 생겼다/
시는 마음으로 그리는 풍경화다/ 붓은 그저 기억으로 휘갈기는 시간이며/ 색감은 캄캄한 내면의 도화지에서/
끄집어 내는 어둠이라는 무상無常의 물감./
눈으로 찍은 사진 같은 표상의 직감은/ 시간의 질량을 한참 왜곡시켜 낸/ 초라한 존재적 이성일 뿐, 이제 시작하는
밑그림에는 도움이 안되는 모양이지만/ 글이든, 풍경화든 그 무엇으로 확장시키든지/ 이미 기억 속에 검은 빛은
반사채 없이 풍경을 수놓고 흐드러지게 핀/꽃잎은 삶을 외면하고 부정한다/
시간의 춤사위가 끝나는 기억의 무대는 거친 붓질/ 몇 번으로 산소를 만들어 내어/ 인간도 광합성을 하는 존재가 됨을 잊지 않는다
문학과 예술로는 자연과 함께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우리는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에서는 여전히 논란의 파고가 크고, 종결되지 못한 논쟁에 불과한 것이 창조주 하느님과 현재의 자연 시계와의 화학적 인과관계가 갈등의 핵심일 겁니다.
자연신학은 다윈의 <종의기원>이 방화범이지만, 칼 바르트와 같은 신정통주의 신학자조차도 “자연에서 나와 인간에게 이른” 신학이라고 매도하였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자기 보존이자 자기 긍정”이라 주장하며 하느님의 초월성을 강조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 속에 인간이 있고, 인간을 만드신 하느님이 인간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분이라면 자연 속에서도 임재하시는 하느님이라는 내재성도 성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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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개역개정 출애굽기 3장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1875년
원제 Woman with a Parasol
작가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년)
소장 국립 미술관, 워싱턴
기법 캔버스에 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