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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지하철 이동

corsicastar 2025. 3. 8. 14:42

오늘 지하철 1호선은 그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잠깐이지만 처음으로 인내를 해야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도봉구에서 시흥까지 가야 하는 일정이어서 1시간 40분은 소요되는 시간도 문제였지만, 청량리까지 나오는데만 열차가 25분 동안 정체되어 가다 서다를 반복하였고, 영어를 사용하는 아이 셋을 데리고 탄 엄마와 아이들의 계속 떠드는 소리, 보채는 어기의 징얼거림과 연거푸 달래야만 하는 엄마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영어 소음에 머리가 아플 지경인 데다가 바로 옆에 앉은 남성이 큰 덩치로 내 팔을 20분 동안 누르는 바람에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든 나머지 심호흡 하기를 수차례로 겨우 청량리를 지났습니다.
다행인 것은 나도 앉은 상태였고, 아이들과 그 아이들 엄마도, 내 옆에 남자분도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내 관심사는 요즘 좋은 이웃으로 사는 것인데 내가 조금만 불편해지면 그 생각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지금 내가 힘들고 불편한 감정들만 솟구쳐 올라옵니다.
내가 이토록 이기적인 인간임을 자백받아야 하는 긴 지하철 이동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좋은 이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몇 차례 만났던 사채업으로 사금융 회장으로 불리는 전주를 만나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데 이 분의 삶이 금융쟁이의 삶치고는 인간적이고 인간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있음을 듣게 되면서 질문이 생긴 것입니다.
주말이면 지체장애인들을 위해 함께 나들이해 주는 프로그램을 자부담으로 봉사하고, 취약계층 노인들에게 무료급식 식당을 운영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지금 좋은 이웃으로 살고 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그리스도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나의 모습과 견주어 봤을 때에 허울뿐인 종교인보다 작은 실천이라도 좋은 이웃으로 사는 행동의 소박함을 듣게 되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부끄러워야 해야 합니다. 과거의 좋은 행실로 산 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느님나라는 언제나 바로 지금의 모습이 중요한 법입니다.

1990년대 춘천에 가면 유명한 삼수三水가 있다고 해서 취재를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소설가 이외수, 허태수, 호수가 삼수입니다.
성암감리교회 허태수 목사가 자신의 책 <내 생각에 답한다>에서 한 말입니다. “나는 기독교의 교리와 휴머니즘 중에 선택하라면 휴머니즘을 택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삶은 교리가 아니라, 실천의 삶이었음을 한국 그리스도교회는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 나중에 온 끄트머리에서 있는 자인, 나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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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개역개정 레위기 25장

35.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36.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37.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38.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39.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40.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41. 그때에는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42. 그들은 내가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43.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쿠엔틴 마세이스 Quentin Massys
“환전상과 그의 아내”
1514년    
파리 루브르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