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지식의 효용성이 지니는 포용력

corsicastar 2025. 3. 14. 09:25

최근 우리 사회의 정치적 상황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가 극도로 분열되어 아귀다툼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뇌가 같은 상황을 보면서 참 다르게 해석함을 보게 됩니다.
필시 이념적으로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는 것 외에도 보수와 진보의 가치 지향 기준이 다름도 그렇고, 사람을 이해하는 기준도 다름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뭐 그렇지!”라고 보는 뇌구조는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어서 이익 중심의 사고를 하는 반면, “사람은 그러면 안 되지!”라고 보는 뇌구조는 인간의 부정부패를 도덕적 가치나 윤리적 덕목을 우선시하여 비판받아야 한다고 사고하는 경향이 더 크다고 합니다.
사실은 둘 다 맞거나, 둘 다 편향적인 잣대여서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서로 대화하며 이해하고자 해야 되는 상대성 기준인데도 인간은 이 지점에서 배려가 없을 때 전쟁도 나고, 혁명도 발생합니다.

나이를 먹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것 중에 ‘지식의 효용성’이 있습니다. 갑자기 뚱딴지같은 주제이기는 하지만, 이 지식의 효용성을 깨닫다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지혜 중에 죄인을 부르러 오신 말씀이 성서 곳곳에 등장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그러나 그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누가복음 5:32-35)

우리가 좌우로 나뉘어 아귀다툼하는 모습 속에는 상대방을 나쁜 존재로 규정하는 프레임이 작용합니다.
이 말은 인간은 자기와 반대되는 견해나 대립되는 입장에 있는 타자를 적대시하는 마음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 보면 이는 인간의 본성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죄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죄는 나쁜 행동을 하는 것만 범주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죄는 자신의 눈에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티를 보고서 지적질하는 행동도 포함합니다.
이미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는 행동은 타인을 향해 분노하는 것과 같은 감정이고, 화내는 것은 감정적으로 상대를 살인하는 것이나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5장 32절에서 말하는 죄는 이런 겁니다.
블레즈 파스칼 Blaise Pascal이 그의 저서 <팡세>에서 말했던 것처럼 “세상에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는 의인과 자신이 의인이라고 하는 죄인이 있다.”
좌파든, 우파든 누구나 타인에게 분노하는 말과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죄란 말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념은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말씀 묵상
개역개정 누가복음 5장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