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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는다는 것

corsicastar 2025. 1. 5. 06:45

신을 믿는다는 것.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을 선정한 평가로 한림원에서는작가가 역사를 통해 고통을 느끼는 인간의 이기주의로 인해 파생된 국가의 폭력과 인간의 취약성(fragility)을 높이 평가함으로 문학의 위상을 인류애로 끌어올린 것을 느꼈다.
쿠바 언론은 작가 한강을 조명했는데 “인간•폭력에 대한 실존적 질문”이라고 평가했다.
인권의 감수성은 이제 노벨문학상 선정을 통해, 전지구적 인류의 보편적 공감대로 기준점이 된 느낌이다.
문학의 힘은 인간의 지성과 이성 사이에서 감성을 후벼파는 실존적 언어라는 점에서 위대하다.
그래서 인류는 문학을 통해 역사를 정리했고, 철학을 구축했으며 예술을 승화시켰다.
심지어는 종교조차도 경전을 만들었다.
경전은 문학의 힘과는 다른 것이 있는데 인류의 감성과 역사와 실존적 탐구를 넘어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규명할 수 없는 비논리적 언어로 표현되고 신화화되는 언어 체계로 쓰여진다는 점이다.

이런 문학과 종교의 간극에서 인간의 학살과 폭력성은 기독교 신학에게는 현실 회피론을 만드는 결과를 낳았고, 그 신학을 믿음으로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을 최소한 현대 인류는 종교적 포비아(phobia/혐오) 충(蟲)으로 평가 한다.
역사적으로도 종교는 인간의 폭력에 실천적 주체로 역할을 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보 안드리치 저서 <드리나강의 다리>에 등장한 역사적 사건인 오스만투르크가 발칸반도를 침략했었던 1516년에 다수의 기독교인들을 드리나강에서 인종학살을 했었던 것을 시작으로 약 476년 후에 기독교인들이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수도인 사라예보 청년 7천명을 학살했었던 종교적 인종학살의 보복이 있었으며 2년 후 1998년에 코소보 사태 때는 이슬람교도 인종청소로 약 500-1200명 사망자가 발생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는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아르
메니아인 학살이 자행되었는데 희생자만 48만명에서 120만명에 이르는 제노사이드(genocide)가 횡횡했고, 이 학살은 나찌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 약 800만명에 이어 20세기에 두 번째로 규모가 컸던 국가 폭력이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와 스탈린의 1932년에 우크라이나 밀 생산량을 러시아로 식량 수탈 결과, 우크라이나인이 기근으로 사망자가 약 500만명에 달했으며 한국의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1980년 5.18광주사태 희생자는 약 500명이었고, 공산주의자 처형이라는 미명하에 제주도 4.3 양민 학살을 국가가 자행했고 그 희생자는 약 3만명이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또 다른 폭력을 연합기도회의 제목을 걸고 ‘1027 한국교회 200만명 연합기도회’ 개최를 선언하였다.
핵심 기도제목이 “동성애 차별금지법 및 젠더 성혁명에 관한 기도”라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젠더사이드(gendercide)‘를 옹호하는 종교 폭력의 광란적 알러지의 표출이자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인 집단행동을 하겠다는 종교적 선언이다.
인간의 폭력과 차별을 오히려 금지하게 하고, 평화적인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교회가 직접 앞장서서 특정성별에 대해 조직적인 박해와 인격적 살해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기도회를 한다는 말인데 이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구호이자 행동이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믿는 그 믿음조차 타자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사랑의 행위를 실천하겠다는 선언이자 행동이다.”
문학과 다른 경전은 이처럼 실천에 큰 의미를 담지하는데, 문학으로 경전의 의미를 다뤘던 작품이 엔도 슈샤쿠의 <침묵>이다.
이 소설에서 예수회 크리스토방 페헤이라(Cristóvão Ferreira) 신부가 17세기 일본의 에도시대에 가톨릭 신앙의 포교를 위해 겪는 신앙과 배교의 처절한 고뇌를 통해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실존적 책임을 묻는 대목을 경전을 따르는 이들은 주목해야 한다.

2024.10.13. 주일 예배 시간에 묵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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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

“할렐루야!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야고보서 4:11-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