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2월 기독교 신문에 실린 함석헌이 쓴 우리의 살 길은 무엇인가? 라는 논설에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습니다.
왕양명(王陽明)의 말같이, “걸음에 맡겨 걸어 나가면 다 평탄한 길이지(信步行來皆坦道)” 길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나라의 길도 개인의 길도 다르지 않습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운동은 숨쉬기 운동과 걷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운동의 효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걷기의 실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속도의 조절입니다. 조금 숨가쁘게 걷기는 근력과 골다공증 예방에 좋고, 복부지방을 감소시켜 줍니다.
조금 천천히 걷는 걸음은 우울감을 해소 시켜주고,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됩니다.
숨을 깊이 쉬며 걸음에 몸을 맡겨 걷는다는 것은 숨쉬는 호흡까지 느낄 수 있는 걷기를 할 때만 얻어지는 통찰입니다.
정수복 작가의 <도시를 생각하다>를 보면 걷기의 도道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산보를 뜻하는 프랑스어 플라느리flanerie는 서두르지 않고 순간 순간 눈앞에 나타는 풍경과 구경거리들에 정신을 팔며 걷는 행위를 말한다."
요즘 사람들이 걷기에 푹 빠져 사는 이유는 바쁘게 살아가는 전쟁터 같은 빠른 일상에서 오히려 불행을 느끼며 살기 때문이고 이렇듯 여유없는 삶 속에서 여유로움을 얻기 위해 산보의 즐거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느리게 걷다보면 걸음뿐 아니라 마음가짐 또한 편안한 마음으로 바꾸어주어 제 분수를 지키며 주어진 환경에서 즐길 줄 아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마음이 생겨나서 나중에는 숨 쉬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만큼 마음도 정화됩니다.
우리의 살 길은 걷기에서 새로워지고 거듭나게 됨을 알게 됩니다.
예수를 따르는 삶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신앙에도 산보하는 듯한 느긋함이 있어야 합니다.
느긋함은 집착하고는 거리가 먼 느낌의 용어입니다.
우리는 집착하고, 소유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삽니다. 느긋함은 오히려 경쟁하지 않는 삶이며 내 소유를 나누는 삶입니다.
당연히 경쟁하는 치열함과도 거리가 있어 보이지 않나요.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6장 26절)는 말씀이 나의 은총의 뿌리고, 나의 나무 기둥같은 재산이며, 내 아버지의 물려주신 열매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이런 사고의 확장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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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