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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교회로 가는 길

corsicastar 2024. 12. 29. 00:16

2024.12.29.(주일).

이 글은 장준식 박사(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세화교회 담임목사)의 글을 일부 풀어 쓴 글입니다.
그의 저서 <기후 교회로 가는 길>에서 준 영감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깨우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인 영혼 구원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그 원인을 보면, 영혼 구원은 중요한데 사도신경에서 매번 고백하는 "나는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이 무색해질 만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분법적 믿음으로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스스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제 부친의 믿음 좋은 신앙관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원로 장로이기도 한 부친은 어차피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곧 멸망할텐데, 기후위기니, 환경운동이니 그런 일을 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강한 80대 노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수적이라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오직 믿음으로 개인적 구원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몸의 부활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 말입니다.

장박사에 따르면 "대기 중 탄소 비율이 증가하면서 산소의 비중이 줄어들고, 이는 바다의 산성화를 불러와 바다 생물을 죽게 만듭니다. 식수난과 식량난이 급속하게 닥쳐서 식량이 폭동이 일어나고 ..."
탄소배출권, RE100, ESG 등 세계는 이제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못하면 재화를 팔 수 없는 시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구 행성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영혼 구원의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영혼이 깃든 몸의 구원을 배제 하지 않습니다."(장준식)
몸이 깃들어 살아가는 하느님의 창조세계를 더이상 영혼구원만을 외치며 방치하는 교회로 남는다면 앞으로는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후변화를 가속화 시켰던 역할에 가장 적은 기여를 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가능성입니다.
자원의 양극화가 부른 또다른 차별 역시 기후위기에서도 작용하게 되는 것이어서 소위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더 자중하고 기후 감수성에 더 예민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교가 발전한 나라들이 대부분 선진국이라는 점에서 기후위기에 둔감한 그리스도교회의 모습은 끝까지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는 선교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자세가 아닐까요?
영혼의 부활과 몸의 부활을 동시에 중요하게 전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볼 때, 하느님이 없는 세상은 창조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세상이 아닐까 합니다.
모두에 말씀드렸듯이 '어차피 예수의 재림이 도래하면 망해서 없어질 세상'이라는 신앙관은 인간의 몸이 살아기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물질세계의 부정이니까요? 그리스도교의 신앙인이라면 성찰해 볼 문제입니다.
인간의 좁은 생각이 종교를 극단적인 자의식을 넘어설 수 없도록 하는 제한적 신앙이 아닌가요?
우리가 깊이 반성할 문제입니다.

아침묵상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