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남 무안공항으로부터 타전되면서 하루종일 슬픔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객기 사고 희생자분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저도 마음이 불안하고, 떨림을 하루종일 경험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하물며 유족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클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가족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죄의식을 가지지 않으셔야 됩니다 ”
정신과의사인 스캇 펙의 저서 <아직도 가야할 길>의 첫 페이지 글은 이런 문구로 시작 합니다.
“인생은 고해의 바다이다.”
어쩌면 너무도 상심이 큰 가족들에게는 앞으로 인생 내내 사랑하는 어머니였고, 아버지였고, 남편이었고, 아내였으며 자식이었던 고인들의 생존의 모습이 생각나서 평생 고통 가운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인의 좋은 모습을 기억하십시오.
고인도 그것을 원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왜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난 걸까?”
자책감이 순간순간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 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와 탄식이 복받침이 되어 울컥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가족들의 잘못도 아닙니다.
오늘 묵상 말씀은 요한복음 14:1-2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저는 사고 희생자들에게 주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앤 윔즈(Ann Weems, 1935-2016)라는
미국의 시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식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 스스로 탄식하며 울며 슬픔에 잠기며, 라헬이라는 성경의 인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읽어 드리는 성경 말씀은 유족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31:15-1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네 울음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 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 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두 번째 아내였던 라헬이 천신만고 끝에 낳은 아들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서 겪었을 법한 고통과 슬픔을 묵상하면서 시인은 자신의 슬픔과 탄식을 시집으로 엮어, 오히려 슬픔을 이겨내려는 몸부림으로 시편 썼고, 세상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해주고자 탄식의 노래를 합니다.
(참고로 라헬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작은 딸인 라헬을 좋아하여 라반에게 딸을 달라 청해서 얻은 부인입니다. 삼촌 라반은 딸을 주는 대신 7년 동안 일하도록 하고 마지막 날 큰딸인 레아를 신방에 들여보냈고, 야곱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라헬이 아닌 것을 보고 다시 7년을 일한 뒤 라헬도 아내로 맞았습니다.
마음이 착한 레아는 아이를 6명 낳았지만 라헬은 아이를 갖지 못했는데, 라헬은 레아에게 시샘을 하여 야곱에게 자신의 몸종인 빌하를 들여 단과 납달리를 낳았습니다.
그 뒤 라헬은 그렇게 바라던 아들인 요셉을 낳았습니다.)
앤 윔즈 역시 아들 토드를 스무 한 살의 생일날에 잃었습니다.
그 슬픔의 탄식을 애가로 고백 합니다.
나의 생명보다 더 귀한 아들이 죽었나이다. / 주께서 나에게 주신 아들이 죽었나이다. / 정의나 자비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 아들이 죽었나이다. / 나는 어둠 가운데 않았고 / 호산나 찬양은 나의 목구멍에 걸려 있나이다. / 왜 내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 부활의 아침을 기다려야만 하니까? (29쪽, ‘탄식 시편 1’ 중에서)
하나님이여, / 끝나지 아니한 사랑으로 / 나는 무엇을 해야 하오리이까? / 사랑은 갈 곳 없이 / 내 안에서 샘솟고 있사오나, / 그 아픔 때문에 / 나의 가슴을 터져 버릴 것 같나이다. / 오소서, 위로자여, / 나에게 오소서. / 이 고통을 잠시만 멈춰 주시오면 / 내가 숨을 조금 쉴 수 있게 되리이다. (42-43쪽, ‘탄식 시편 7’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