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교부 중에 시메온 스틸리테스Symeon Stylites, 390~459는 돌기둥 위에서 37년간 극단적 금욕 생활을 한 인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하느님께 감사하라. 그것이 진정한 경건이다."
초대 사막 교부들의 자학적 금욕주의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인간이 추구하는 ‘피안彼岸’은 말 그 대로 ‘언덕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의 동경에서 시작된 것이어서 그들이 집착했었던 금욕도 하느님께 향한 하나의 예배가 아니었을까 생긱해 봅니다.
아빌라의 성 테레사Saint Teresa of Ávila,1515–1582도 겸손을 영적 성장의 덕목으로 삼았던 스페인의 대표적 수도자였는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겸손은 진리를 걸으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다."
이 말은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고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자신을 수용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철학에서 말하는 인식의 범위는 아닙니다. 우리의 이성과 지성과 감성으로 인지할 수 있는 세계는 물질적 세계이며 이 물질적 세계는 카트는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있는 것만을 인지할 뿐 '물자체 Ding an sich '는 인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인지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중력에 영향을 받는 물질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관념론을 토대로 아르키메데스의 철학적 기점으로써 새로운 유심론 Idealism을 추구했었던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1685~1753를 통해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는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버클리의 '물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감각적 경험과 정신적 관념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버클리의 주장은 현대 과학의 기라성 같은 실증주의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는데,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실재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버클리의 “존재는 지각된다”는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또한 리처드 파인만Richaed Feynman은 양자역학을 설명할 때, 실재의 존재 여부가 철학적 관념이나 인간의 지각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 중에 아주 중요한 겸손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인지하는 것에도 역사적으로 철학과 과학의 상반된 이론이 충돌하며 과학이 추구하는 설명의 영역과 철학이 추구하는 해석의 영역이 도무지 상호작용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영성이 필요 합니다.
진리는 어렵지 않으며 단순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사는 것은 친절한 이웃으로 사는 것만큼 단순하며, 계산하지 않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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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개역개정 미가 6장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