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춘천 기온이 영하 17도였습니다.
몇년 전 택배 현장일을 했을 때 어느해인가 서울이 영하 17도였던 날 새벽 분류를 위해 출근한 날이 있었습니다.
한파에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초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만큼 고통스럽답니다.
그날 기독교방송에서 Pat Boone의 목소리로 흘러 나오는 찬송가를 듣는데 황홀함에 빠져 추위를 이겨냈었던 기억이 납니다.
2021년 2월에 마이클 샌델(하버드 정치학과 교수)이 『공로의 횡포Tyranny merit 』에서 공리주의 철학의 계승자 답게 “공동선”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공로는 능력주의에서 얻어진 보상의 의미로 합리적일 것 같지만, 우리 사회에 미치는 폐단이 너무 커서 보상에 따르는 세금부과 요율 적용부터 공동선의 가치적 기준 잣대를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쓰레기 청소부의 직업은 의사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들이 없다면 세상은 전염병으로 창궐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틴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연설문 내용처럼, 인간의 노동은 모두가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으려면 각자의 노동의 가치가 “공동선”에 얼마나 기여 하는지에 따라 평가받고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세상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능력주의만이 시장의 시스템 안에서 환영 받는데 그 이유는 얼마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가와 극대화할 수 있는 수익으로 결판 납니다.
하느님은 이미 인간에게 노동이라는 체벌을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먹지 말라고 했던 선악과를 인간이 먹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비극적으로 일을 해야만 했던 인류는 노동의 댓가로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으나 역사적으로 봉건주의 때나 지금의 시대나 노동의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만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계급 때문이었고, 지금은 자본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가 좋습니다.
그 분에게서 본 받고 싶은 것이 있는데, 공생애 3년간 노동하지 않으시고 자유인으로 사셨다는 사실입니다.
공생애 전에야 아버지 요셉의 직업을 이어 목수로, 노동자로 사셨지요.
하지만, 하느님나라를 인간 세상에 알리신 3년간은 노동을 하지 않고서 사시는 놀라운 순례자의 삶을 사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은 사람은 능히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신 나태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살아야 하는 조건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보여지는 현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노동관조차 하느님께 맡기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일의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나, 입신양명立身揚名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일을 해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태도라니까요.
직업이 어부, 세리 같은 노동자 계급이었던 제자들을 불러 제자 삼아 이스라엘 천지를 다니신 예수가 보여준 노동관은 먹고 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후세에 알려 주셨습니다.
하느님나라의 계몽이었죠.
다행히 현 시대에는 예수처럼 극단적으로 직업을 버려 가면서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태도는 하느님은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다는 신뢰가 필요 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중심으로 하느님의나라를 만들어 가고자 할 때 우리가 그 어떤 선택을 해도 결단만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우리는 모두 목사요, 선지자로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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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개역개정 마태복음 6장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시씨의 성프란체스코 수도원에 동상 :
이 동상에 한 쌍의 백비둘기는 하나가 죽으면 어디선가 다른 흰비둘기가 날아와서 프란체스코를 지킨다고 합니다.
저도 직접 보았지만, 하느님이 성 프란체스코에게는 그가 죽은 지금도 새를 통해 보호하시고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했습니다.
사실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한 신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