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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양심에 대하여

corsicastar 2025. 2. 7. 08:53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양심conscience’이란 주제로 2024년 말에   '프란시 드 발Franciscus de Waal' 의 공감의 시대』라는 번역 책을 냈습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더 잘사는 것은 비극적인 사회여서 팔을 걷어 붙였다고 합니다.
양심을 서양에서는 '컨시언스'라고 말하는데, 이 뜻의 어원은 사이언스(과학)와 맞닿아 있습니다. 
동양에서 “양심良心'을 어질양, 마음심을 쓰는데 이는 배려와 공감에 가까운 의미로 이해한다면, 서양에서는 과학의 어원을 비추어 봤을 때 양심을 '법률적 양심'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2025년 2월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국론이 반으로 쪼개진 상황입니다.
정치인들은 국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시 하는 자들과 국가와 민주주의 편에서 투쟁하는 사람으로 구분지어졌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양심이 살아 있는 사회인가, 반문하게 되는 작금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나라의 미래가 걱정도 되는 상황을 보내고 있는 것도 오늘 양심을 주제로 묵상해 보는 이유입니다.
이런 이유로 논리학의 아버지로 수사학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의 스승 플라톤이 수사학은 연구하지 말라고 한 이유를 선명하게 알 수 있는 사례를 지금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양심은 어찌보면 성서가 말씀하고 있는 것과는 인간 문명에서는 다른게 발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언어학자들은 단어가 사라지는데는 다른 언어로 순환되거나 용도 폐기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프란시 드 발은 "공감은 포유류에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말하는데 포유류 동물들은 같은 종의 고통과 죽음을 대하면 슬퍼하거나 애도하는 공감 능력을 지녔다고 말합니다. 
예외로 조류의 경우, 까마귀 정도가 동료의 죽음을 집단적으로 애도 하는 장례 절차를 거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감에 대해서는 까마귀만도 못한 포유류도 있습니다.
며칠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이스라엘에 귀속시키고 여기 거주민들을 이집트와 요르단으로 강제 이주시키겠다고 선언한 보도를 봤습니다.
남의 고통이 뭔지, 230만명을 집단이주 시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사람의 존엄은 개의치 않는 즉흥적 발언으로 인종청소를 하겠다는 것이 옳은 일린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세계 최강의 미국 대통령이 한 말치고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자본 밖에 모르는 포악한 신인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대통령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많은 동물 중에서도 가장 구체적으로 공감에 대해 사회적 반응을 보이는데 책 내용을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 프라테르니테fraternite(형제애)'를 외쳤고,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동정심'의 유대에 호소했으며,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nelt는 '동료의식'을 ”건강한 정치적·사회적 삶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서에서는 일찍이 양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들이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이 로마서의 말씀은 인간에게 하느님은 예수를 알지 못했던 모든 세대에게 구원의 지표로 하느님의 성품인 '양심'을 주셨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으며, 이 '양심'이 인간에게 주신 내면의 도덕적 기준이 되어 행동을 판단하는 역할을 강조하시는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 안에는 아주 작은 양심이라는 빛이 있고, 그 빛이 하느님의 생명력을 유지시키는 겅력한 에너지 근원이 되는 것임을 그리스도인은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부정직과 부도덕한 양심, 선의의 거짓말이 아닌, 악의적 거짓말과 시기와 질투 등에서 기인된 마음의 상태가 하느님과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알 수 있는 표시가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양심이라는 촛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