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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로 한 걸음씩 왜 가지 않느냐

corsicastar 2025. 2. 8. 14:55


불경에 "보보시도량 步步是道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수행concrescence' 이라는 뜻입니다. 
20세기의 과정철학자이며 수학자였던 화이트헤트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가 "종교는 수행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보면 종교의 영역은 수행이 없이는 성숙한 수준까지 도달하는 것이 불행이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종교는 사람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사회에 해악을 키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과정철학에서는 신의 주체를 말하지 않고, '비인격적 창조성impersonal creativity' 은 특정한 존재가 아니라, 모든 과정과 사건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인 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해석은 서양철학에서는 니체가 형이상학적 전통 인격신을 배격하면서도 '신God이라는 개념을 버리지 않고, 신의 비인격적 창조성Creativity' 연결지으면서 인간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강조하는 주장과 비슷합니다.  
만찬가지로 동양철학에서도 ‘형이상形而上’이란 개념은, 형체가 없어 감각적으로도 파악할 수 없고, 오직 직관直觀에 의해서만 포착되는 초자연적超自然的이고 관념적觀念的인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의 ‘metaphysical’를 형이상으로 번역하는 데,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의 되기를 "형이상학은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형이상이라는 말은, 주역 계사전周易 繫辭傳에서 "形而上者謂之道,形而下者謂之器"라고 적고 있는데 의미는 “형상 이전의 것을 ‘도道’라고 하고, 형상 이후의 것을 ‘기器’라고 합니다. 
주자는 이것을 "이는 기의 주재主宰이며, 기는 이의 운용運用 이다."라고 말했고, 이것이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 입니다.
 
불교에서는 수행을 뭐라고 정의할까요.
도와 기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데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첫째는 불립문자'不立文字'요, 둘째는 '직지인심直指人心' 이요, 셋째는 '견성성불見性成佛'입니다.
곧,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철학에서 말하는 수행과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의 차이가 있습니다. 
철학적 수행에는 불교에 없는 특징이 하나 더 포함되어 있는데, 신의 '비인격적 창조성' 입니다. 
화이트헤드의 수행은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신God 중신의 창조 개념에서 벗어나 있으나, 세계 자체가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되고 있다고 설명 합니다.
 
굳이 철학과 불교에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이치를 다뤄본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에서는 절대적 하느님의 통치와 순종이라는 전통적인 신앙을 통해 의존적인 신앙, 기복신앙,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데, 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라고 하는 이율배반적 신앙의 모순 극복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에 동의하셨을까, 아니면 행위의 보응으로 판단하실까.
건강한 신앙은 복을 비는 마음의 신앙도 아니고,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신앙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 구원의 문을 여는 천국의 열쇠입니다.
동서양의 철학도, 불교조차도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인식론적 한계를 지닌 지식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만도 못한 구원을 믿는 교리를 우리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너무나 자주 마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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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개역개정 마태복음 7장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작품 : 익투스
폴 고갱Paul Gauguin
1890.
유화
41.6 x 56cm
다니엘 말랑그 소장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그리스어 의 첫 글자에서 따온 단어이며, 그리스어로 같은 발음의 ‘익투스’는 ‘물고기’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