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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배우며 삽니다.

corsicastar 2025. 2. 20. 19:12

나의 좌우명은 간디의 어록에서 찾아 오랫동안 실행하고자 노력하며 살고 있는 중입니다. 
"Live as if you were to die tomorrow, Learn as if you to live forever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내가 감리교 목사이자, 도시빈민 활동가의 삶을 살았었던 이력을 뒤로하고, 2024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포고한 후에 감리교회의 대응을 보면서 실망한 나머지, "감리교회는 이제 끝났다. 문 닫으라"라고 혼잣 말로 외치면서 독립교회를 선택해서 출석한 것을 보고, 감리교회에서 존경받는 환경 운동가이신 은퇴를 앞둔 목사님이 대화 중에 나의 대답을 들으시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만 배우고, 직접 웨슬리의 정신을 실천하면 되는 것 아닌가. 사실 많이 속상했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면 배우고, 깨달은 후에 실천하는 삶이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감리교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아쉬움을 토로하시는 선배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내 좌우명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1885년 4월 5일,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한 것을 한국 교회의 시작으로 본다면 2025년은 한국교회의 역사가 1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조선감리교회를 시작으로 한국 감리교회가 시작된 104년이 되는 해입니다.
최근 이미 이단으로 판명 났지만, 반사회주의적이고, 파시즘적이며 보수도 아니면서 극우라고 자처하면서 대통령의 내란을 부정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자들의 정치적 난동을 이끄는 전광* 목사와 이를 동조하는 중대형교회 목사들과 교인들, 그리고 특정 정당의 국회의원으로서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헌법을 채택한 국가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표출하는 수많은 퇴행적이고, 거짓으로 점철된 거짓선동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지금까지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기복신앙祈福信仰 때문에 사실상 이토록 처참하게 망가지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복신앙은 말 그대로 '복을 빌며 의지하고 믿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설교 때마다 자주 "복 받으십시오, 복 받기 위해 기도 하십시오,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등 예수를 믿는 것이 복을 받기 위함이요, 구원받기 위함이요, 부귀영화를 누리며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함이라는 메시지로 설교를 해 왔었고, 그것이 예수를 믿은 이유 중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할 만큼 성도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제가 대표를 맡고 있는 회사의 회계 책임자이신 70세가 넘으신 장로님이 계십니다. 김보흔 시인이기도 하신 장로님은 대학을 진학한  20세 때까지는 불교를 믿으셨었던 분이셨는데, 대학에서 두 명의 친구를 만났던 것이 이 분의 삶을 상당히 변화시키셨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명문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니셨는데, 같은 학과 친구가 같이 성서를 공부하자고 하여 결국 불쌍해서 같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때 성서를 공부하자고 했었던 친구분이 지금 내가 새롭게 출석한 독립교단의 교회 개척자였던 목사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아버지가 태백 탄광촌 노동자였는데,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자, 아버지에게 은행에 취업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목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에 그 친구의 부친이 우셨다고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친구는 나중에 태백이라는 탄광촌에 목사로 살면서 헤비타트 목수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그 먼 태백까지 교회를 찾아가서 장로님이 친구에게 질문을 했답니다. 
"너는 좋은 대학도 나와서 마음먹으면 서울에서 목사로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이 깊은 산골 태백까지 들어왔는가."라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친구 목사님이 "믿음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알았네"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갑자기 내 눈물이 왈꽉 나올 뻔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도 그랬고, 수많은 성인聖人들도 그렇게 믿었던 것이 예수 신앙입니다. 
우리는 험난한 시장자본주의적 생태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가르침을 따라서 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임을 살아 본 사람은 나이의 연식에 따라 깨달음의 정도는 다를지라도 어느 정도의 버거움인지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 하느님의 형상을 입고 창조주의 신실한 일꾼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며 사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오늘 장로님이 해 주신 말씀을 끝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나오는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후에 비유적 해석으로 빛과 소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하고 물으신 후에 액션플랜을 주셨는데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노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은 화를 내는 그 순간이 제일 나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노하면 상대와는 감정교류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감정교류를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감정으로 살인을 하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감정교류 대상이 점점 줄어듭니다. 심지어는 부모와도, 부부도, 자녀도, 친구도 점점 더 속내를 이야기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분노를 표출하면 더 이상의 감정을 교류하기는 어려울 것이 뻔합니다. 
제발 우리 기복신앙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말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 나의 인생을 사랑하는 것, 자연을 사랑하는 것, 타자와의 교류를 기뻐함으로 수용하는 것, 배려하는 것 그러므로 상생하는 것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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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개역개정 마태복음 5장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1. ○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사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 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Mahatma Gandhi
진리를 걷는 자. “나는 평생 옳은 길을 찾아 살아왔다.”